목회칼럼 04/06/2025
- Man Sub Kim
- Apr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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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예배에 요한서신서를 계속해서 나누고 있다. 요한서신서에서 말하고 있는 “이애칭의(형제를 사랑하므로 의롭다함을 확신함)”는 성경에서 말하는 “이신칭의(믿음으로 의롭다함이 인정됨)”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존재하는 진리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하는 자이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는 또한 그 안에 성령의 임재하심과 역사하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일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에 진심이다. 이와 같이 일에 형제 사랑은 중요한 역활이다. 이 형제 사랑과 우리의 구원을 온전하게 하는 믿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여기서 한가지 더 중요한 부분을 같이 나누고 싶다. 요즘 현 시대 교회들이 부족한 부분이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확신이다. 구원의 확신이라기 말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확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역사하시는 확신이라고 하고 싶다.그 이유는 조금 있다 같이 살펴 볼 것이다.
그럼 왜 이 확신이 필요한가? 만약 확신이 없이, 연약하고 희미한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장애물과 유혹 거리에 쉽게 넘어간다. 이뿐 아니라, 교리적인 면에서도 너무 많은 이단과 사이비들이 나타났다. 설령 정통 교단에 속했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해서 들어야 할만큼, 타락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것은 요한일서가 쓰여지던 당시와 거의 비슷하다. 이단들(변질된 기독교들도 포함된다)이 독버섯처럼 자라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서식지는 교회였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만연한 하나의 문제는 자기 기만과 자기만족에 빠진 신자가 많다. “나는 구원받았으니까 됐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는 확신이 없이도, 적당히 신앙생활로 규정된 것들을 행하면서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앙의 본질은 그런 외적 행위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된 믿음에 있는 것인데, 그 믿음의 참됨을 스스로가 어떻게 확인을 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다. 만약 지식적으로만 “나는 구원받았으니까 됐습니다”라는 확신은, 자칫 자기 기만에 이르기 쉽기 때문이다.
진정한 확신,살아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의 확신은 어떤 것인가?만일 우리가 온전한 확신을 얻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우리의 믿음이 한낮 지적 동의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다.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열망하게 된다.더 이상 누가 그에게 기도하라고 독려하거나 권할 필요가 없다.그는 자기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분명하게 인식한다.또한 이 땅에 목을 매고 살거나 미련을 가지고 살던 전과는 달리,그는 하늘을 사모한다.또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하나님의 말씀에서 위로와 평안을 얻어 누린다.그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열심을 품는다.신자들이 확신을 가지게 될 때,교회는 교회답게 변할 것이다.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