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06/22/2025
- Man Sub Kim
- Jun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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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 문학사인'H.G. 웰즈'는 유사이래 가장 위대한 인물로 예수님을 뽑았다. 그는 크리스쳔도 아니다. 또한 영생에 대한 믿음도 없다. 그런 그가 예수님이 위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수가 위대하다는 말은, 그 사람이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얼마나 쌓아 놓았는가, 혹은 죽음과 함께무너져 없어질 그 무엇을 얼마나 많이 건설하였는가에 의하여 평가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그가 세상에 존재하였기 때문에 세계에 달라진 것이 무엇이며, 인간들에게 어떠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으며,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오래도록 존속할 수 있는가에 따라서 정한 것이다.”
예수님처럼 인류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준 사람도 없을 것이다. 과연 '갈릴리' 목수의 집에 탄생하신 예수님은, 과학적 역사가인 '웰즈'가 본대로, 인간적인 입장에서만도 역사상 최대의 위인의 영예를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그렇게 단순하게 역사적으로 대다한 인물만은 아니다. 그의 생에 있어서는 너무나 위대한 것, 너무도 이상한 것, 너무도 거룩하고 신비스럽고 역설적인 것이 많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의 기념상이나 전기만을 남긴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은, 역사 안에는 인간의 힘 그 이상의 힘, 자연의 힘 그 이상의 힘, 즉 어떤 신비한 초자연적인 힘이 활동하고 있음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요즘 우리 교회에 이모저모로 아픈분들이 있다. 중대한 수술을 받으신 분들과 수술을 기다리시는 분들도 있다. 교회적으로 기도가 간절히 필요한 시간이다. 성도님들이 열심으로 기도하고 있다. 왜 교회의 성도들은 기도를 하는가? 예수님이 바로 우리들에게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가장 약한 부분을 아시고, 손수 직접 경험하셨다. 물론 신학적으로는 예수님의 구속을 이루시고, 완성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다(Incarantion, 성육신)라고 알고 있고 믿고 있지만, 예수님의 성 육신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나타내기 위하신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5~8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말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제자들에게 큰 용기와 도전과 위로를 준다. 큰 용기와 도전은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런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고, 우리도 이와 같이 살수 있다는 모델로서 예수님의 삶을 닮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큰 위로는 위에서 말씀 드린데로,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님은 너무나 먼, 그리고 우리와 상관이 없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시고,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는 우리의 구주 참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히브리서 4:15에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는 구절이 바로 하나님(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과 아픔, 고통을 헤아리시고 공감하시며 채율하신다는 뜻이다. ‘동정하다’는 헬라어 원어는"συμπαθῆσαι" (sympathēsai) 로, ‘함께 고통을 느끼다’, ‘공감하다’는 뜻이다. 시편 103:13에서는,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라고 말씀하신다. 또 이사야 63:9에서는,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에 사자가 그들을 구원하였으며, 그의 사랑과 그의 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드릴 수 있다. 지금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연약한 분들이 있다. 이분들이 우선적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또한 이분들의 이름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기 바란다. 주님의 긍휴하심과 채율하심이 우리 교회에 임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