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26
- Phil Ahn
- 3일 전
- 2분 분량

아브라함의 부르심: 소명과 순종, 그리고 예배의 여정
1.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르심과 소명의 보편성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여정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이주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부르심'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혁주의 신앙에서 소명은 특정 종교 지도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와 하란이라는 세속의 중심지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셨듯, 오늘날 우리 각자를 삶의 현장에서 부르신다. 이 부르심은 아브라함의 공로나 자격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에 근거한다. 하나님은 목적 없이 부르지 않으시며,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에게는 그 삶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이 있다.
2. 세속적 가치관(달 신 문화)으로부터의 단절 아브라함이 떠나야 했던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은 단순히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당시 메소보다미아를 지배하던 '달의 신(Nanna) 문화'를 의미한다. 달신 문화는 자기 중심성, 물질적 풍요가 곧 축복이라는 세상적 가치관이다. 데라는 하란에서 멈추었지만, 아브라함은 그 익숙한 삶의 방식과 터전을 버리고 떠났다. 이것은 '래디컬(Radical)한 신앙'의 모습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 하나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배하던 세상의 질서와 결별하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는 결단이다.
3. 복의 근원: 관계 속에서 증명되는 축복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은 아브라함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폐쇄적인 복이 아니다. 이 복은 '관계'를 통해 흘러가고나타난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가 복을 받고, 그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는다는 것은 성도가 세상 속에서 '복의 통로'로 존재해야 함을 뜻한다.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평화(Shalom)가 임하고,하나님께 무릎 꿇는(Barak, 축복) 역사가 일어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 속에 '복의 근원'으로 세우신 이유이다.
4. 갈 바를 알지 못하나 하나님만 바라보는 훈련 아브라함의 순종이 위대한 이유는 목적지를 다 알고 떠난 것이 아니라, "보여 줄 땅"이라는 미완성의 약속을 붙들고 나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꺼번에 모든 지도를 보여주지 않으시고 한 걸음씩 인도하셨다. 이는 아브라함이 땅(결과)보다 하나님(인도자) 자체에 집중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셨다. 우리 삶에 미래가 불투명한 이유는 하나님과 더 깊이 동행하며 매 순간 그분의 이름을 부르게 하려는 사랑의 장치이다.
5. 현실의 기근을 이기는 예배의 삶 약속을 따라 도착한 가나안 땅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미 원주민들이 좋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심한 기근이 찾아왔다. 순종의 결과가 곧바로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척박한 현실 한복판(세겜, 벧엘)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이것이 개혁주의 신앙의 핵심인 '코람 데오(하나님 앞에서)'의 정신이다. 환경이 나빠졌다고 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취소된 것이 아님을 믿고, 예배를 통해 약속을 재확인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태도이다.
신앙 도전을 위한 질문:
[단절에 대하여] 아브라함에게 '하란'이 익숙하지만 떠나야 했던 과거의 삶이었다면, 현재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는 데 방해가 되는 '나만의 하란(세상적 가치관이나 습관, 또는 관계, 중독 등등)'은 무엇입니까?
[동행에 대하여] 나는 인생의 모든 계획과 안전장치가 완벽히 갖춰져야만 움직이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갈 바를 알지 못해도 인도하시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하며 한 걸음을 내딛는 사람입니까?
[예배에 대하여] 기대했던 '약속의 땅'에서 오히려 '기근'과 '방해자'를 만났을 때, 나는 상황을 원망합니까?, 아니면 아브라함처럼 그 자리에서 먼저 예배의 제단을 쌓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 합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