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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26
아브라함의 부르심: 소명과 순종, 그리고 예배의 여정 1.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르심과 소명의 보편성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여정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이주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부르심' 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혁주의 신앙에서 소명은 특정 종교 지도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와 하란이라는 세속의 중심지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셨듯, 오늘날 우리 각자를 삶의 현장에서 부르신다. 이 부르심은 아브라함의 공로나 자격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에 근거한다. 하나님은 목적 없이 부르지 않으시며,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에게는 그 삶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이 있다. 2. 세속적 가치관(달 신 문화)으로부터의 단절 아브라함이 떠나야 했던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은 단순히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당시 메소보다미아를 지배하던 '달의 신(Nanna) 문화' 를 의미한다. 달신 문화는 자기 중심


1/18/26
[설교 요약]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만나는 하나님: 소명과 정체성 1. 호렙산으로 향한 모세의 갈급함 80세의 노인이 된 모세는 40년 전 이집트에서 민족 해방을 꿈꿨으나 실패하고 미디안 광야에서 이방인(그의 아들의 이름처럼 게르솜)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이끌고 굳이 150~200마일 떨어진 '호렙(황폐한 곳)' 산으로 향한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인생의 해답을 찾고자 했던 '하나님을 찾는 자(God’s Seeker)' 의 갈급한 여정이었다. 2. 타지 않는 떨기나무: '큰 광경'의 의미 하나님은 화려한 에셀나무가 아닌, 광야의 흔한 '떨기나무(불쏘시개)' 가운데 임재하셨다. 불꽃이 타오르나 나무가 사라지지 않는 이 '큰 광경' 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준다. • 떨기나무의 상징: 바로의 압제 아래 있는 이스라엘, 그리고 상처와 실패로 마른 가지 같은 모세와 우리의 인생을 상징한다. • 불꽃의


1/11/25
신앙 생활의 핵심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집중되는 것이다. 왜 집중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믿음으로 하는 그 행동자체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집중할때, 힘과 능력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이 마음, 즉 우리의 동기가 어떠한가가 믿음의 척도이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향하는 마음의 동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기에 믿음은 전적으로 성령의 선물인 것이다. 믿음이 우리의 열망의 집중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예수님께 우리의 생각을 집중시킨다는 것이 믿음으로 나타나게 된다. 최근에 한가지 일에 대해서 나누고 싶다. 각 교회 마다 연말에 항상 연말 행사를 한다. 그 연말 행사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성경 퀴즈 대회나, 장기 자랑, 간증 등의 시간을 갖는다. 그 취지가 교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우리의


1/4/2026
가장 고상한 지식: 왜 우리는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가야 하는가? 2026년 한해의 교회 표어가 정해졌다. “영광스러운 그리스도를 함께 알아가자!”이다. 그리스도가 가장 고귀한 분이시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이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믿음과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간다. 그래서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고백한 그 고백에 동의하고, 열심으로 그리스도를 따라 살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빌립보서 3:7-8a) 1. 지식 그 이상의 생명,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신앙생활의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신앙 그 자체이자 영생의 본질이다. 요한복음 17:3절은 명확히 선포한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


12/21/25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그 배경을 좀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누가복음은 신약성경의 네 복음서 중 하나로, 의사 누가가 이방인 독자(데오빌로)를 위해 예수님의 생애를 역사적 · 신학적으로 자세히 기록한 책이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주로 누가복음 2장 1-20절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는 로마 제국의 정치적 상황과 유대 민족의 메시아 기대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전개된다. 예수님 탄생 당시(기원전 4년경 추정)는 로마 제국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 (옥타비아누스)가 통치하던 시기였다. 로마는 광대한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인구 조사(호적 등록)를 실시했는데, 이는 세금 징수와 군대 동원을 위한 목적이었다. 누가복음 2:1-3은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고 기록한다. 이 호적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조상의 고향으로 돌아가 등록해야 했


12/28/25
2025년 마지막 주일이다. 한해가 지나가고 새로운 한해가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며, 새로운 각오와 좋은 계획들을 세운다. 좋은 계회들이 다 이루어지기를 소원한다. 2026년에는 어떤 계획들을 세웠는가? 육신적으로 어떤 운동을 할 것인가? 정신적으로는 건강한 생각과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명상을 하며, 어떤 여행을 하려고 하는가? 우리들의 계획들이 중요하다. 계획이 서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도 계획대로 움직이셨다. 그의 모든 사역은 하나님의 큰 계획 속에서 사역하셨다.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그 시간, 그 장소까지도 계획대로 되었다. 예수님의 태어나심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다. 계획이 없다면,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2026년 당신의 계획은 어떠한가? 어떤 계획들이 서 있는가? 무엇을 하며, 어떤 곳을 다니며, 어떤 사람들을 만날 계획들이 서있는가? 당신의


11/30/25
한 해가 다 가고 이제 한달만 남았다. 또한 가을이 깊어 가는 시절이다. 나무 잎들을 다 떨어지거나, 노랗게 빨갛게 변했다. 2026년이 눈 앞에 와 있다. 엊그제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12월달을 맞이했다. 시간을 잡을 수 없다는 옛 사람들의 말은 진리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내 안에서 메아리 친다. 내 자신에 대한 자기 각성일수도 있고, 성령님의 목소리 일수도 있다. 인생이 낭비되지 않게 해야 하는데, 나의 힘으로는 이렇게 할 힘이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만든다.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시간이 헛되이 사용되고 만다. 에베소서 5:15-1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지혜 있는 자 같이 하라.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1/23/25
11월달은 감사의 달로 지낸다. 추수감사절은 미국 최대의 연휴 중의 하나이며,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따뜻한 시간이다. 또한 각 사람에게 감사했던 것이 기억하며, 서로 선물을 보내는 아름다운 기간이다. 날씨가 추워지며, 이렇게 따뜻한 온정이 서로를 녹이는 그런 씨즌(season)이 되었으면 좋겠다. 미국의 추수 감사절은 그 시작이 정말 참담한 속에서 시작되었다. 1620년 9월, 영국 청교도 102명이 메이플라워 호(Mayflower)를 타고 신대륙으로 출발했다. 영국 국교회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를 거쳐 종교 자유를 찾던 이들은 원래 버지니아로 가려 했으나 폭풍으로 코스 변경되어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Plymouth)에 상륙했다. 상륙지는 원래 와파노아그(Wampanoag) 부족의 패투셋(Patuxet) 마을이었다. 1614~1620년 유럽인 전염병(천연두 등)으로 부족민 90% 이상이 사망해 거의 빈 땅이 되었던 곳에 정착한 것이다. 첫 겨울(


11/16/25
요즘 요한복음 12장에 나오는 내용으로 커피브레이크를 나누고 있다. 요한복음 12:40절에서 예수님은 이사야 53:1절을 인용하신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라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큰 표적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왜 이 말씀을 하셨는가? 예수님 당시에 살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전하는 하늘의 복음과 하늘의 행적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사야 6:8-10절을 보자.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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