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11/9/25

바알브올의 사건은 이스라엘에게 아주 큰 사건이었다. 모든 수령들이 한번에 다 죽어, 리더십이 한번에 없어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그런 사건이었다. 이때 모세는 모든 수령이 아닌,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자들만 죽이라고 명령한다. 민수기 25:5절을 보자. “모세가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바알브올에 가담한 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막 문 앞에서 울고 있었다. 아직 모세의 명령도, 하나님의 명령도 따르지 않고 그저 울고 있었다. 이때 더욱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민수기 25:6절을 보자.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에게로 온지라” 바알브올의 사건으로 리더십들이 다 죽느냐, 마느냐 하는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시므리가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온 것이다. 그 여인의 이름은 “고스비”이다. 민수기 25:15절을 보자. “죽임을 당한 미디안 여인의 이름은 고스비이니 수르의 딸이라. 수르는 미디안 백성의 한 조상의 가문의 수령이었더라” 그녀는 한 수령의 딸이었다. “고스비”란 뜻은 두 민족이 연합하여 잘 살수 있다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다. 우상 숭배를 하는 민족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찌 연합하고, 통혼하여 잘 살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은 총제적 난관에 붙딛쳤다. 왜인가? 이미 바알브올의 사건 자체가 벌써 모압 여인들을 통해서 우상 숭배에 빠지는 심각한 죄악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미디안 수령의 딸이 버젓이 나타나, 이스라엘 장막 한 가운데 들어선 것이다. 미디안 수령의 딸을 데리고 온 것은 미디안과 연합하고, 미디안과 함께 통혼하여 살겠다는 그런 의미이다. 총체적 난관이다. 리더십의 생각이 다 무너져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사라진 것 같다. 

이때 한 인물이 일어섰다. 비느하스이다. 민수기 25:8절을 보자. “그 이스라엘 남자(시므리)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시므리)와 그 여인(고스비)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비느하스는 제사장으로서 이 총체적 난관을 보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만약 비느하스가 그때 나서지 않았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는 어떻게 되었을까? 비느하스가 급하게 이 일을 시행하지 않았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바알브올과 고스비의 사건으로 죽은 사람들이 24,000명이었다.) 더 죽지 않았을까? 

민수기 25:11절을 보자.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멸시키려고 하셨다. 이 얼마나 위중한 상황인가? 공동체의 리더들이 죄를 간과하고, 흔들리는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흔들리는 것과 같다. 감사하고, 다행이도 하나님의 질투심을 가진 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광야의 이스라엘 공동체와 지금의 교회는 같은 경험을 한다. 세상의 유혹과 바알브올의 사건, 고스비의 사건과 혼탁한 세상의 탁류는 어쩌면 그렇게 동일한지 모른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서 있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서 있을때, 공동체를 살릴 수 있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밸리중앙장로교회_밸리한인교회

15204 Plummer St. North Hills, CA 91343  

Tel: 213-255-8833

주일예배: 오전 11:00

수요예배: 오후 7:30

​새벽기도회: 화-토, 오전 5:30

©2025 by 밸리중앙장로교회 | Valley Korean Central Presbyterian Church

  • Youtube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