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03/23/2025
- Man Sub Kim
- Mar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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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 2, 3서는 보석과 같은 서신서이다. 요즘 계속해서 새벽기도 시간에 요한 서신서를 같이 나누고 있다. 토요일 어제 나눈 본문 속에 귀한 보석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같이 나누고 싶다. 요한 사도는 그 당시에 어려움을 격고 있는 성도들에게 다시 한번 확실한 복음의 진리를 전해 주고 싶었다. 특히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들의 신분이 하나님의 아들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한다.
복음의 역사가 시작되고 가장 위로가 되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아들과 딸로 삼으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무리 위급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 놓여 있어도, 참된 위로를 충분하게 주시는 언약의 위로가 된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요한일서 2장 28-29절부터 3장1-2절을 보자.
28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29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예수님의 당시와 바울과 요한 사도가 사역하던 시기에는 양자됨에 대한 개념이 있었다. 특히 로마는 양자에 대한 특별한 제도가 통용되고 있었기에, 바울의 서신서나, 요한의 서신서, 심지어 복음서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양자됨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유산을 물려받는 자들이라고 말하며,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요한 사도가 요한 서신서에서 말하는 뉴앙스는 이것과 사뭇 다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표현에서 요한 사도는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자들, 즉 태어난 자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심령 속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 이가, 거듭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낳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의미로 성도들을 부른다.
요한 사도는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받게 하셨는가(3:1)?”라고 반어법적으로 질문을 통해서 그 하나님의 자녀됨이 얼마나 귀중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인지를 들어낸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너무나 특별하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랑으로도 그 사랑을 대처할 수 없다. 인간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잘 모르기에 하는 큰 실수이다.
사랑이 많이 있지만,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만든 사랑은 그 모든 사랑과는 차별화된 다른 종류의 사랑이다. 세상은 이런 사랑을 알 수도 없고 경험할 수도 없다. 이것은 오직 무한불변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만이 온전한 의미에서 행하실 수 있는 사랑이다. 이 사랑은 인간이 세상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여 받은, 그 어떤한 상처, 또한 모든 상처를 치유하고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완전하고 무한한 사랑이다.
세상에 완전한 사랑은 없다. 모두가 다 불완전하다. 세상에 영구한 사랑은 없다. 다 식어버리는사랑이다. 세상에 무한한 사랑은 없다. 모두가 다 한계가 있고 조건이 있는 사랑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을, 영구한 사랑을, 무한한 사랑을 죄인에게 베풀어 주신다. 이 사랑이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 사랑이다. 당신은 그 사랑을 지금 경험하고 있는가? 그 사랑에 잠겨 있는가? 그 사랑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